나의 이야기

비봉의 가을 일상

문응서 2023. 10. 19. 16:28

비봉산 뷰

2023년도 벌써 마지막을 향해 열심히 달려 가고 있다. 최근 몇달 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나의 블로그에 들어 온적이 까마득하다. 그런데 벌써 짧은 가을이 끝나가고 있다. 10월의 중순을 넘어 겨울의 문턱을 향해 가고 있다. 아침 저녁의 기온은 영상 10도 이하로 내려 가고 있다. 며칠 전엔 최저 기온이 4도를 찍었고 아침공기가 찬기운을 몰아 온몸을 구석 구석 파고 든다. 벌써 콧물과 눈물은 덤이다. 겨울이면 나타나는 콧물과 마른 눈물은 겨울이 가까와 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아침부터 벼베는 기계가 논을 이발하듯 빙빙 돌면서 사각의 각진 코너를 돌아 거침없이 벼에서 이삭과 짚단을불리하며 거침없이 돌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벼 추수 장면이라 구경을 하고픈 마음에 서둘러 집 앞논으로 나갔다. 부지런한 마을 어르신이 콩밭을 둘러 보다가 인사를 건네는 나에게 그 답례로 동장댁 오늘 벼베기 작업한다고 귓뜸을 주신다. 길을 건너 논으로 나아가니 동장댁 아주머니는 멋있는 장면을 잡아 내고자 연신 폰 카메라를 눌러 대고 계신다. 사진이라면 질 수 없는 나이기에 동장댁 사모님에게 꾸벅 목례를 건네고 쑥스러움을 감추려 잠시 구경 나왔다고 말했다. 벌써 논을 한바퀴 돌아 동장님의 탈곡기가 정면을향해 느릿하지만 쉼없이 달려 오고 있다. 능수능란하게 기계를 모시는 모습이 그저 존경 스럽다. 오늘은 동네에서 첫 벼베기 논이 동장댁이다. 오늘 부터 벼베는 이유는 벼 수매가 오늘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 전에 미리 벼를 베지 않는단다. 오후에 비소식이 있어서 오전에 서둘러 벤다는 말씀이다.

멀리 비봉산배경 양서리 들판

쉼없이 볏짚을 뒤로 내려 놓으며 저멀리 엉금 엉금 기어가는 기계를 보고 예전에는 낫으로 사람들이 직접 베든 시절이 있었다. 요즈음 벼수확 현장의 모습은 예전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을 보인다. 소시적 우리집 논에서 모심기와 벼베는 가을을 떠 올려 보면 일가족이 총동원이 되고 그것도 일손이 모자라서 외갓집의 사촌 형들까지 일손을도우던 시절과는  너무도 다르다. 기계한대만이 덩그러니 넓은 들녘을 외로이 다니고 있다. 지금쯤 어머니와 할머니가 머리에 새참을 이고 저 멀리서 바쁜 발걸음을 옮기며 아슬아슬 오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지금의 논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동장님 부부만 논에 있다. 벼베는 기계 한대가 양서 들녘의 벼를 모두 깍는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것이 주위의 논을 농부 한두명이 농사를 짓고 있는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농촌에 없으니 퇴직한 내가 이 마을에서 가장 어린 나이이고 보면 60대는 청년도 아니고 꿈나무 어린이에 불과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나이고 보면 그저 주위의 풍광들이 낯설고 신기할 따름이다. 

양서리 들판 벼베는 모습

벼베는 논에서 향기가 나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냄새다. 아니 향기에 가깝다. 너무 강하지도 그렇다고 약한 향기도 아닌 벼 특유의 냄새가 나고 있다. 기분이 업 되는 향기이다. 아마도 봄부터 무더운 여름의 냅새들을 다 아우러고 비로소 가을에 내뿜는 입김처럼 훅 코끝을 스치며 지나가는 향기는 그간의 노고를 보상해 주듯 달콤하고도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하는 묘한 향기를 전하고 있다. 벼향기가 이렇게도 맛있는 밥냄새와도 견줄 수 있을 정도의 향이 난다. 달콤하다. 싱그럽다. 상쾌하다 가을 바람처럼 높은 푸른 하늘처럼 맑고 고운 냄새다. 따가운 햇살이 그늘 하나 없는 논에서 발걸음을 옮겨 억새가 일렁이는 논둑길로 안내한다. 주위가 온통 황금들녘이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동안에 힘겹게 싸워온 시간들을 사색이라도 하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비바람에 쓰러진 벼들들도 보이고 잡풀인 피사리들이 가득한 논도 보인다. 저마다 치열한 전투를 치른 전사처럼 굿굿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봉산장의 배추와 무

농막 텃밭에 김장 배추와 무를 심었다. 마늘과 양파를 심은 자리에 10일전 쯤 배추와 무를 심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심었는데, 잘 자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주위의 경험이 풍부한 지인 친척들로 부터 노하우도 전수 받고 나름 사전 지식에 몰두했다. 근데, 벌써 부터 배추 폭망했다는 안동 친구의 볼멘 소리에 나름 긴장했지만 우리집 배추는 지금까비 별탈 없이 잘자라고 있다. 물론 몇 포기를 벌레들과 민달팽이에 헌납했지만 나름 성공적으로 잘자라고 있다. 일반 배추보다 비싼 모종의 항암배추를 심은 누이도 폭망했다는 전갈이 왔다. 지금까지 김장 배추와 무를 얻어 먹다 올해는 그 은혜를 갚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보고 잘 키워 보라고 격려도 해 주신다. 올해 김장은 우리집 배추가 김장으로 태어나길 희망한다. 

비봉의 안개낀 아침

작년에도 옥수수를 심었는데, 고라니인지 멧돼지인지는 몰라도 한그루도 못 건지고 고스란히 헌납했는데, 올해는 철통같은 대비로 그물망으로 울타리를 치고 베어낸 매실나무 가지들을 이들이 다니는 길목을 차단하며 방어전을 펼쳐서 무난하게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아내의 입안으로 옥수수의 알갱이기가 사라지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비봉의 간식 홍시

화장실이 없어서 다소 불편하지만, 밤마다 볼일을 보려고 밤하늘을 바라보고 별자리를 감상하는 이득도 챙긴다. 한두번도 아니고 밤마다 졸리운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오는 일이 정말 성가시고 귀찮지만 밤공기의 상큼함과 어둠만이 줄 수 있는 깜깜한 밤하는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는 것 또한 수고의 댓가로 보상 받는다. 멀리서 들짐승을 쫓는 녹음된 총소리가 요란하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매일 총소리를 내는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고요한 시골 마을의 적막을 깨는 잠못드는 어르신들이 총소리에 놀라 다시 잠드시기 어려운 밤이 되겠다. 

양서리 도로변 코스모스

비봉의 아침은 또 다른 세상을 알리는 시작이다. 어느 유튜브에 벌아저씨를 본적이 있다. 그분은 엠씨와 인터뷰 하다가도 말벌을 잡으러 매미채를 들고 뛰어 다니는 모습이 재미있고 한편으로 측은해 보였지만, 이제 나도 벌아저씨처럼 아침부터 쉴새없이 이리뛰고 저리뛰는 모습에 우리딸이 아버지는 벌아저씨다라고 영상을 보여 주길래 나와 너무도 닮은 모습에 웃음이 나오질 않을 수 없었다. 

호박의 변신은 무죄

요즈음 아침 마다 짙은 안개가 자주 낀다. 안개가 낀 시간은 그리 길지가 않다. 물론,  안개낀 날은 날씨가 매우 맑다는 얘기다. 정훈희 송창식의 듀엣곡 '안개'가 떠오르는 영상이다. 물론 영화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안개이지만, 아침을 뿌연 안개를 마시며 시작하는 기분은 묘한 가정을 불러 일으킨다. 자라나는 채소들과 밤새 멸치와 밥으로 비벼 놓은 밥을 먹고 간 길냥이의 밥그릇을 확인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은 오늘도 행복한 비봉에서의 가을날을 만끽하며 시간을 잊은 듯, 세월을 잃은 듯 살아가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어느새 어르신으로 변해 가고 있다. 거울을 자주 보지않고 지내온 그간의 생활이 오히려 나에겐 큰 위안이 된다. 오늘도 딱새 한마리가 열심히 먹이를 물고 다닌다. 희뿌연 안개 틈새로 날개짓하며 둥지로 날아 간다. 헤브 나이스 데이, 여러분!

미니 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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