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순천 송광사로 향한다. 아니 정확히는 불일암이다.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시다 입적하신 법정 스님이 지내시던 송광사 뒷산 불일암을 목적지로 정하고 한걸음에 달려간다. 거리가 한숨에 달려가기가 너무 멀어서 섬진강 휴게소에서 애마 스포를 쉬게가면서 주인도 한숨을 돌린다. 섬섬옥수빛 섬진강을 보고 싶었지만 다리를 건네며 푸른 맑은 물빛을 눈팅하면서 차를 달려 가고 있다. 두시간이 훌쩍 넘어 세시간을 달려 송광사 입구 주차장에 주차하고 무소유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송광사 본절을 옆으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비탈길을 오른다. 생각보다 비탈의 경사가 만만하지 않다. 갈래길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니 빗장이 쳐저있고 돌아가라는 폣말이 나온다. 숲길을 돌아 올라가니 갈림길에서 좌측 중앙에 호젓한 산길이 나있다. 우리거 올라온 길은 속세의 찻길이고 정작 무소유길은 비포장 흙길에 나무 말목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숲길이다. 군데 군데에 법정 스님의 글 속에 나오는 무소유 실천의 말씀이 흩뜨러진 마음을 재삼 재사 새기게 하는 글귀판이 보인다. 비교적 가까은 거리에 불일암자 서 있다. 키큰 소나무와 대나무 숲길을 통과하니 빗장이 열린 암자로 들어가는 죽문이 나온다. 묵언 수행하라는 말씀이 무색하게도 암자 내에는 먼저온 관람객들이 떠드는 소리가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만 그들만의 세상인것을 탓해 무엇 하리요.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보러 무엇을 얻으러 무엇을 닦으러 왔단 말인가. 후박나무 밑에 계시는 스님이 불쑥 일어나 낭랑한 목소리로 꾸집을 듯 싶으나 한번 떠나간 님은 돌아 오질 않는다.
스님께서 몸소 일구던 밭이 비교적 혼자 가꾸기에는 다소 커 보이지만 스님께서 거느리고 있던 식솔들이 여러명이고 또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보니 이밭으로도 부족한 듯 보이지만 무소유 임자 치고는 텃밭이 넓어 보임은 왜일까? 스님께서 잠들어 계신 후박나무 기둥이 왠지 초연해 보인다. 암자 한 모퉁이에 스님께서 직접 만드시고 앉아 계시던 나무의자가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제는 주인을 잏은 채 슬픔에 잠겨 있을 의자를 보며 스님께서 앉아서 명상에 잠기고 책을 읽고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를 귀울이시게 한몫 톡톡히 하고 이제는 은퇴하여 햇살 가득한 댓들 한켠에 고독하게 바람을 맞고 있다. 굳게 잠긴 문에서 묵언을 수행하라는 스님의 목소리가 울려 나올 것만 같다. 이런 정적을 깨는 대담한 중년 부부가 아내는 후박나무를 가슴으로 안고 있고 남편은 동영상을 남기려는 듯 아내 뒤를 졸졸 따라가는 모습이 안스럽다.
내려오는 무소유길은 올라 올때의 길이 아니고 진정한 숲길로 송광사로 이어 지고 있었다. 스님의 책속에 나오는 글귀들이 길 곳곳에 남겨져 있어서 그 글들을 주워 모으면서 어느 새 큰 절 송광사 입구에 이른다. 대사찰 답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승보사찰인 송광사는 비교적 건물들이 새것으로 보이는 데 전쟁으로 사찰 건물들이 새로 지어진 것들이 많다. 대웅전으로 들어 가는 마당 한켠에 홍매화는 이미 꽃망울이 맺혀 있다. 아직도 찬바람이 몰아치는 와중에 몰래 봄소식을 망울 속에 고이 간직하다가 북풍한설이 잦아 들때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대웅전에 들러 삼배를 올리고 돌아나오는 계곡물은 얼음을 등에 업고 세찬 물줄기를 연신 뿜어 내고 있다. 고드름인가 얼음인가 기하학 모양을 만들어 내며 한 못에 이르러 떨어진 단풍잎을 주어와서 부처님 얼굴을 그려내고 있다.
발걸음을 돌려 조계산 맞은 편에 있는 선암사로 향한다. 송광사오는 다소 분위가 다른 태고종의 총림으로 세계문화 유산에도 등재되었고 절입구에 보물로 지정된 승선교는 사진 촬영의 명소로 이름있고 많은 고목들이 절입구와 경내에 여기저기에서도 볼 수 있다. 건물들이 비교적 오래된 사찰로 아름다운 사찰로 유명하다.저녁 나절이라 돌아가는 탐방객들이 더 많은 모습에서 아마도 조계산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이들로 보여진다. 하나같이 양손에 스틱을 잡고 이마에 두건을 질끈 메고 먼길을 걸어 온 산행객으로 추청된다. 그들은 지친 기색을 보이지만 발걸음은 남은 힘을 다하여 집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