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모임1과 2

문응서 2022. 12. 19. 11:58

올들어 가장 추운 날 아침이다. 새벽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온몸에 한기가 올라온다. 새벽에 서울에 다들 볼일이 많은 가 보다. 버스가 꽉 찬다. 몇해 전만 해도 여기저기 빈좌석이 많았는데, 최근 몇년 동안은 그야말로 만석이다. 이제 서울이 그리 먼 거리는 아닌 듯 싶다. 어렵게 일년에 한두어번 가는 먼거리 여정이라 피곤함은 물론이거니와 온몸이 여로에 의해 지치다 파김치가 되는 것을.

잠시 눈을 붙였다가 눈을 뜨니 바깥 세상이 흰눈으로 덮혀 있다. 산천이 하얗고 지붕마다 골목마다 빼곡히 흰눈으로 채워져 있다. 눈발이 날리는 가 싶다가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진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낭만적이다가도 현실로 돌아오면 길이 미끄러워서 버스가 고생하겠다는 수고로움이 남겠지. 차창엔 기온차인지 유리창이 뿌옇개 흐려오고 있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손끝이 얼음 알갱이로 변한다. 버스안의 온도계가 영하 8도를 가리키고 있다. 중부지방에 다가갈 수록 더욱 더 눈발이 거세지고 있다. 차창 와이퍼가 바쁘게 손사레를 치지만 눈이 창문에 달라 붙어서 얼음으로 떨어진다. 금새 물방울이 빙수가 갈리듯 얼어 버린다. 팥빙수처럼.

서울은 서울이다. 하나같이 바쁜 걸음 속에 나혼자 한가롭다. 롱페딩을 잘 가져온 느낌이 든다. 영하 10도를 넘어 가고 있다. 3호선을 타는 승강장이 평소 보다 빨리 도착했다. 한번 더 대화행을 확인하고 지진 몸을 전철에 맡기다. 역시 빈자리가 없다. 경로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서있다. 아직은 난 아직 경로석을 이용할 자격이 아니다 어제 퇴임한 신분을 숨기고 젊음을 과시하지만 이내 여행의 피로가 몰려 온다. 앉을까 말까 고민하는 데 다음 역에서 연로한 형님 누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자리 경쟁을 하느라 그 갈등도 사라진다. 문칸 사이에 모서리 벽에 몸을 기대에 톡을 확인한다. 진주 친구가 나보다 두어 정거장을 앞서 가고 있다. 부지런히 숨을 몰아 쉬어 백석역에 내린다. 벌써 십수번 왔던 곳이라 몸이 머리를 안내하고 있다. 이번엔 코가 몸을 이끌고 있다. 한방 삼계탕의 구수한 칙칙거림이 멀리서 코 끝을 자극하고 있다. 벌써 두 친구가 나보다 삼계탕을 기다리고 있다. 몇 개월만이다. 우리는 일년에 서너번은 만나니까.

한그릇 뚝딱 비우니 금새 피로가 사라지고 오후의 일정으로 향하다. 몇 시간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오늘의 메인 장소로 향한다. 대화역이다. 그야말로 대화가 필요한 시각이다. 먼저 숙소에 짐을 풀고 횟집으로 향한다. 영하 13도를 웃도는 날씨다. 노출되는 모든 부위가 얼얼하고 시리다. 제철인 대방어 한 접시를 주문한다. 생각보다 회값이 비싸지 않다. 접시에 가지런히 놓인 올해의 첫 방어전이다.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보기에 주방장의 칼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물론 비싼 부위는 실종했어도 서울 사람들 눈에는 그저 감탄에 감탄을 자아내다. 4명이 먹기에 약간은 부족한 듯, 그 사이 조약사가 왔다. 약국이 근처에 있어서 우리가 들리던가 아님 한 번씩 모임에 참석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물론 마음씨 좋고 좀 뒤에 그 후한 마음씨를 보여준다. 마지막 주인공, 장회장이 오고나서야 오늘의 성원은 모두 이루어졌다. 올해는 양촌의 김원장은 곶감 출하를 앞두고 바쁜 시즌이다. 내년 설이 빠른 관계로 아마도 일손이 바쁜 모양이다. 며칠 전 부터 바쁘다는 사진들이 톡에 올라오고 있다. 조약사가 조기 귀가 하면서 밥값을 지불하고 떠났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씨가 아닌가!

왠지 허전한 빈구석을 다시 채우려는 마음이 2차로 투다리 비슷한 맥주집에서 이루어 졌다. 연말이라 그런 가는 곳 마다 사람들로 젊은 이들로 가득하다. 역쉬 서울이나 경기도는 젊은 사람들이 많고 활기차다. 창원만 하더라도 시내중심가에서나 젊은 이들을 구경할 수 있지만, 변두리 식당은 어디 노인들로 가득하니 미래가 아무래도 암울하다. 하지만, 이곳 수도권은 그래도 미래를 책임질 역군들이 다 모여 있어서 그래도 이들이 밝은 미래를 이끌겠지.

스크린에 이어 숙소에서의 전쟁은 11시에 끝났다. 몇해 전만해도 자정을 넘기고도 모두들 생존했는데 12시를 못 넘기고 다들 달콤한 내일을 위해 꿈나라로 간다. 나도 여독의 영향으로 언제 잠들었는 지 모른다. 그야말로 꿀잠은 아침 해가 떠고 나서야 끝나다. 장회장은 믿음을 몸소 실천하러 교회로 떠나가고 아침에 다시 황산벌 전투가 벌어 졌다.

찬바람을 가르며 아침 해장국집으로 간다. 빈자리가 없음은 간밤에 전투가 다들 치열했던 것 처럼 보인다. 해장에 또 해장술을 걸치는 젊은 이들이 부러워요. 보기에는 꿀꿀이 죽 같아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이집 콩나물 해장국은 술을 잠재우고 맑은 아침을 돌려주는 신비한 묘약이 숨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작별로 흔드는 손끝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각자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 간다. 한박사와 나는 같은 전철로 이동한다. 오늘 나는 가족들과의 점심이 약속 되어 있다. 집사람도 어제 올라와서 딸과 함께 보냈으리라. 오랜만에 우리가족 4명이 모이는 뜻 깊은 자리에 아들이 듬직하게 식당까지 잡아놓고 초댓장을 보냈다. 물론 아버지 퇴임식을 기념해서 이겠지.....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빨리 도착했다. 물론 약속 시간보다 한참 빠르다는 것도 알지만 지난 번에 우리가족이 만났을 때 근처에 봉은사 절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다음에 한번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그 절에 가기로 하고 왔다. 일단은 밖으로 나와서 봉은사로를 따라 걸어서 100여 미터까지 전진했지만 이내 돌아 서 버렸다. 영하 10도의 찬바람을 이기지도, 그리고 목적지까지 생각보다 멀어서 내 몸이 힘들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이내 포기하고 다시 지하철로 내려 가다. 내가 일찍 도착했다는 톡에 다들 놀랐는지, 다들 아버지 걱정을 하고있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는 부모님을 걱정하는 모습들이 내심 기분이 좋다. 아들이 전화가 와서 가까운 커피숍이나 교보문고라도 가보라고 했다. 그렇다 무료함을 달래주는 곳은 서점이나 커피숍이 제격이지. 9번 출구에 교문이 있었다. 책이 있어서 그런지 따스함은 더 진했다. 책에 푹 빠져 있을 때 아들이 찾아 왔다. 아직 시간이 삼사분이나 남아서 커피랃 한잔 하자며 근처 스벅으로 향하다. 무심코 들어 갔는 데 스벅의 장식이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별과함께 R자가 있는 스벅이 아닌가, 아들이 Reserve의 R이라는 설명이다. 아쉽지만 우리가 마시는 라떼는 알바생 작품이란다. 그래도 뭔들 맛이 없겠는가 아들이 오랜만에 사주는 커피인 것을 말이다. 기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사라지는 거품을 아쉬워하며 홀짝이다 보니 금방 바닦이 보인다.  천천히 마실껄......

라떼 한잔에 그동안 얼었던 몸도 마음도 다 녹았다. 아들의 얼굴을 직접대면하기가 그리도 힘드는 데, 오늘은 바로 가까이서 바라보는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한 것이 아닌가, 더 이상의 바램은 죄가 될테이니까, 딸도 무탈하게 잘 지내고 수시로 톡을 하니까 매일 만나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근데, 아들은 톡을 자주 안하고 꼭 필요한 것만 빼먹고 눈팅만 하는 녀석이라 오늘은 짧지만 얼굴 구석 구석 변화된 모습을 관찰하고 마음 속으로 아들의 얼굴을 몰래 훔쳐 내기억 저편으로 옮겨둔다. 부자지간에 할 말이 왜이리도 없지?

예약한 식당이 정말 걸어서 2뷴 3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말 그대로 메리가든(Merry Garden)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아담하고 높은 곳이다. 주변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룹탑으로 된 식당으로 강남을 한눈에 둘러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집이다. 벌써 아리따운 아가씨들 한 무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자리는 이들이 앉은 자리 뒷 쪽이라 메인 무대 쪽에 파티 포토존이나 메인 스테이지가 이들이 가리고 있어서 허공에 메달린 산타크로스와 눈 인사만 건넬 뿐, 촌사람의 두리번 거림을 제한하고 있다. 아내와 딸이 종종 걸음으로 합류하고 가족이 다시 완전체가 되고 아들 딸이 주문한 것은 모두가 서양요리들이네, 봉걸렌지 봉골레 파스타를 필두로 피자 등등 그야말로 즐거운 메리(merry) 가든이다. 

식사 후에도 아직 돌아갈 버스 시간이 두어 시간이나 남아 있다. 수지가 인근에 가배도라는 커피샵을 추천 하길래 그 곳으로 향하다. 그러나 강남이 어디 호락호락 쉽게 이런 핫플레이스에 빈 자리를 남겨 두겠는가? 가는 곳마다 만석이다. 좁은 골목안이 젊은 이들로 가득찬 이곳은 강남스럽다. 인근 커피샵에 여장을 풀고 도란도란 서로간의 자유 주제로 얘기의 시간 아들과 아내는 제일 관심사가 집문제이고 딸과 나는 영어공부에 푹 빠져 있는 딸아이의 집중된 영문법의 공격을 막아 내느라 대화가 두 곳으로 나누어졌다. 바람처럼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쉽다.

아들이 왠인일지 자기 오피스텔로 초대 한다. 여기서 버스로 10분이면 간다고 하니 기꺼이 갈 수 있다 그보다 더 멀리도 말이다. 점심 후에 바로 집에 초대를 하지, 시간이 별로 없는 지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는 지? 집에 머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을 노린 것이다. 왜냐하면 집사람 성격에 화장실 청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니까 분명 어지러운 아들 방을 그냥 두지 못할 것이겠지만,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방구경만 하고 떠나야한다. 잠시 바깥 풍광을 감상하고 눈에 보이는 삼풍 백화점 자리에 지금 윤대통령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가 눈에 들어 온다. 아크로비스타라한다. 이름이 생소하다. 그런대로 밝고 비교적 깨끗한 오피스텔이다. 전셋값 대출 이자가 배로 올랐다는 얘기만 빼고는 그런대로 회사에 가깝고 생활하기 편리한 곳이라니 마음은 놓인다.

사실은 아들이 올해 초 본사로 올라오면서 급하게 얻었던 월세인 처음 원룸이 너무 좁고 오래된 오피스텔이라서 혼자 지내기도 넘 좁은 공간이라서 아들이 이곳으로 얘기 없이 옮겼단다. 커피숍에서 이사했다는 사실을 말했을 때 모른 척 했지만 그리고 사실 엄마가 알려 줬다는 얘기를 실토 했다. 아들은 굉장히 현실적인 유형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다 그러하듯이 집과 돈 그리고 미래 등 이런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것에 만감함을 알고 시골 생활이나 농사일등을 말해 보지만 관심이 정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구의 아들인가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 올까?

밤공기를 가르며 버스는 남으로 남으로 꿈꾸 듯 미끄러져 달리고 있다. 꿈속에서도 낮에 함께한 아들 딸이 곁에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내는 곁에서 자지도 않고 바캍 풍경과 몰아 일체를 이루고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함은 그 이유가 있다. 그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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