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꼭 눈올 날씨인데

문응서 2022. 12. 13. 15:39

간밤에 내린 비가 새벽녘에 서릿발이 되어 파릇한 잎사귀에 서리꽃을 피웠다. 길도 블랙아이스 처럼 워킹화 바닥과 맞닿아 미끄덩 거린다. 아직도 동백 꽃잎은 비를 머금고 영롱한 이슬로 남아 있고 보는 이는 차가운 손끝을 호호 불어 입김을 더하다. 하늘엔 반쯤 베어먹다 버린 하현달이 무심히 내려다 보고 있다. 아직 서산으로 넘어 가기에 뭔가 미련이 남아 있듯이 어정청 빈하늘을 맴돌다 오늘따라 처량하게 보이는 것은 내마음 탓일까.

코끝을 스치는 매서운 냉기도 아직은 뉴스에서 호들갑 떨던 주중 한파라는 기상예보와는 달리 아직은 여유로운 온화함을 보이고 있다. 영하의 날씨와 영상의 날씨는 그 차이가 매우 크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체감온도에 크게 영향을 준다. 전국적으로 눈을 예보하고 있지만 이 곳 따뜻한 남쪽 나라는 눈은 커녕 겨우 땅을 적시기에 미흡한 비가 내렸다. 

교감샘이 이른 아침에 보낸 쿨 한통, 사직서 서식 한통이 날아와 있다. 며칠 전 교감샘이 그 서류를 다듬고 있었다. 며칠 후면 그 서류가 날아 갈 테니 마음 단디 드이소라는 멘트가 있었지만, 왠지 직접 받고 그 자리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데 묘한 기분이 든다. 서약서와 함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재직 기간 등을 작성하고 잠시 그 내용을 한번 더 읽어 본다. 

이 학교에 몸 담으면서 이제는 이곳이 제2의 고향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삶의 터전이었는 데 이제 미련없이 떠나기엔 아쉬운 시간이고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것 처럼 허전하다. 짐을 꾸리려고 가져온 종이 상자가 왠지 낯설고 짐을 싸기 싫은 기분 마저든다. 내일 짐 정리를 마무리하자는 동료 샘의 재촉에 마지 못해 짐을 꾸리지만 이제 며칠 후면 방학이고 그러면 이제 학교에  올날이 며칠 되지않는다. 먼저 나간 동료들은 벌써 자신의 삶의 터전을 일구어 정착하는 시간에 접어 들었지만 난 이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묘한 기분이 든다. 

하루종일 꾸무리한 날씨 탓인가? 바람이 불어서 인가? 찬바람이 더욱 더 차갑게 느껴지고 곧 다가올 한파가 피부로 먼저 전달이 된다. 연말 연시다 보니 여기 저기서 송년회를 알리는 단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내 일정표에는 이번 주가 피크이다. 빈날이 없다. 이번 주 정신 단디 차려야 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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