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을 처음 접한지도 어언 10여년이 지난 오늘 아담한 크기의 농막이 완성에 이르렀다. 올 9월 중순경 부터 첫삽을 뜨기시작한 공사가 두어달이 된 이 시점에서 마무리 될 수 있어서 무엇보다 마음이 놓인다. 그간에 애쓰주시고 공사를 직접 지어주신 누나와 자형 두분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것이 마땅하다. 결단력과 용기있게 시작한 집사람의 공이 가장 커지만, 기초공사할 때 예고없이 나타나 농막의 사각 틀을 용접해주고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을 준 영남씨 부부와 지난 주말 맛있는 매운탕을 한 냄비 싣고 오셔서 점심의 추억을 쌓게 해 주시고 거기에 상수도 관을 10여 미터 파주신 형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서툴지만 - 사실 자형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평생에 집한번 지워 몬적이 없는 아마추어 초보들인 지라서 일의 진척이나 일머리가 둔하여 애를 먹었다. 주말의 황금 시간을 처남의 퇴직 기념 소일거리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주신 누님과 자형의 고마음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이제 상수도도 들어 오고 어제 전기 공사도 어느 정도 마무리 하고 나니 이제 집같은 쉼터가 되었다. 11월 첫째 주 토요일 놈막의 지붕을 올리게 되어 농막에서의 첫날을 잊을 수 가 없다. 집사람과 나란히 누워 창밖을 내다 보는 데 보름에 다가가는 제법 차오른 달이 휘영청 창문을 넘어 가장 먼저 찾아온 손님이었다. 집사람의 얼굴위로 비추길래 마음 속에서는 뭔가 뭉클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불을 켜지 않아도 밝은 달빛이 좁은 방안을 훤하게 비추어 주었다. 이 넓은 세상을 비추는 달이 코딱지 만한 방이야 말할 나위도 없이 구석 구석 밝게 비추고 있다. 간간히 솔부엉이 울음 소리 그리고 커엉 커엉하는 고라니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지만 이래저래 잠이 오지 않은 밤이다.
처음엔 바닥이 따뜻한 전기 담요 위에서 피곤한 육신을 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서운 칼 바람이 코끝을 지나서 시린 눈을 공격하고 있다. 달에 취해서 추운 줄도 몰랐지만 자정을 넘어서니 이불을 머리꼭대기 까지 둘러 씌워야지만 냉기를 물리칠 수 있었다. 야밤에 한번씩 화장실에 가는 잠습관 때문에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가니 아우 밖은 휘엉청 밝은 달밤이 한겨울의 추위로 들러 쌓이고 있었다. 그날밤 영화 5도까지 떨어졌다는 뉴스를 아침에야 알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덜떨어진 눈을 비비고 밖으로 나오니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눈꽃을 만들어 놓았다. 꼭 눈이 내려야 세상이 하얗게 되는 것만도 아니다. 뭇서리도 눈에 버금가는 하얀색을 꽃잎마다 가지마다 하얗게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누나와 자형이 동생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아침 댓바람에 영천에서 날아 오셨다. 아직도 살아 있는 모습이 신기하신 모양이다. "야들아, 너거 어제 밤에 않 춥더나. 우리는 너거가 얼어 죽은 줄 알았다." 하시며 잰 걸음으로 달려 오신다.
사실 겉모양만 둘러 씌워 놓은 건물이다 보니 구석 구석 구멍마다 칼바람이 그대로 관통을 했으니 그냥 야외나 다를바가 없었다. 올 들어 그날 밤이 가장 추운 영하의 기온 이었으니 말이다. 누나가 오시기 전에 식은 아침밥을 따끈한 물에 말아서 먹는 기분은 세상 어디에도 맛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맛이다. 안 먹어 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지리산 산장에서 코펠로 밥을 지어 언 손을 호호 불며 먹던 밥 맛과 비할 수 있다.
오늘이 비봉산장에서 맞이하는 두번째 밤이다. 오늘은 낮부터 초여름에 육박하는 낮기온을 보이더니 저녁이 되고 밤이 와도 첫날의 호된 신고식에 비하면 여기가 무릉 도원 이상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느 정도 물샐틈 없이 막아놓은 틈새들이 외부 공기를 차단하여 드뎌 러브 하우스의 진면목을 심어 주고 있다. 첫날에는 방문고리도 없이 일장갑으로 막아 두었는 데, 이제는 한밤중에도 그렇게 기온이 차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온화한 밤을 보내고 있다. 집사람은 짧은 샤워실 커텐의 길이를 잇는 바느질을 하겠다고 초저녁 시간을 보내고 하루 종일 땅을 파느라 힘쓴 본인은 초죽음이 되어 초저녁 잠을 청하고 있다. 도란 도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밤을 흘러 보내고 있다.
두번째로 맞는 비봉산의 아침은 찬란하다. 아침햇살을 어깨너머로 햇빛을 올리고 마지막 불타오르는 단풍들을 갈아 입고 긴 겨울의 여정을 서두르고 있는 차들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밤새도록 지나가는 차들과 어느 술취한 취객의 고함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곁에 잠자던 아내가 놀라서 이 야심한 밤에 술에 취해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냐고 한다. 나는 그 소리의 중인공을 알고 있다. 고라니 울음이란 것을, 몇 주전에 참나물 잎사귀가 예브게 자랐는데 그다음주에 오니 누가 말끔히 베어 갔더라고요. 누나 말하기를, 그 주인공이 바로 고라니란다. 그래 갸들도 먹고 살아 야지요.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하고 나눠 먹어야 하는 것을,
올 여름 누나와 자형이 심어라고 거져다준 옥수수 모종 약 오백게를 몽땅 하나도 못건지고 헌납한 주인공이 고라니나 멧돼지 였을 것일 진데, 탐스럽게 익어 가던 옥수수 다음주면 먹을 ㅅ 있겠거니 생각하고 그다음 주 밭에 와서 보니 누가 이리도 깨끗하게 청소를 했는지 옥수수대를 바닦에 일렬로 눕혀서 알맹이를 깨끗이 그것도 말끔히 해치우고 갔다. 처음엔 이들의 소행이라고 믿기지가 않더군요..분노에 앞 서 허탈한 마음 뿐, 집사람도 체념한 듯 옥수수는 심지 말자고 할 뿐 대책은 울타리를 치던가 아님 약을 뿌리던가하라고 한다. 친환경 자연과 함께하기 위해 지금껏 농약 한번 않쳤는 데 지금에 와서 친환경 무공해 자연 농법을 바꿀 수도 없고 이것 참 "난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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