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12월 3일 (수) 아침 9시 30분 학교 정문 앞에 2박 3일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떠날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마중 나온 다른 학년의 선생님들과 여러 선생님들의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받으며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출발하는 비행기가 각기 달라 1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시작으로 3시 20분, 3시 30분 3대의 비행기에 나누어 타고 출발한단다.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누리 마루와 낙동강 하구언 을숙도에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산서 제주로 가는 항공사는 대한항공 1개 회사뿐이다. 아시아나나 몇몇 저가 항공회사가 출항을 그만두었다니 요즈음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겠다.
우리 반은 2진으로 두 번째 비행기다. 제주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4시 20분이다. 10분 뒤에 오는 3진이 벌써 본진과 합류하여 본격적으로 제주 투어에 올랐다. 나이가 지긋한 기사아저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용두암으로 향하던 버스가 방향을 바꾸어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한다. 버스가 제주 칼 호텔 곁을 지나갔다. 낯이 익어 쳐다보니 내가 신혼여행 왔다 숙박한 그 호텔이 아닌가......
자연사 박물관은 입구에서 ‘창원고 졸업 여행단 환영’이라는 전광판이 파노라마처럼 돌아간다. 입구 계단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한다. 어디 여행의 흔적은 사진 밖에 더 있겠느냐. 많이 찍자. 첫날부터 머리를 들이대는 다른 반 아이들의 방해공작에 얼마나 시달릴지 아이들의 사진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오래 갈지 궁금하다.
자연사박물관은 옛 제주 주민들의 생활상 뿐 만 아니라 제주의 모든 자연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듯싶다. 실물과 다를 바 없는 모형물에 감탄을 자아내며 어두워진 북제주의 하늘을 머리에 이고 숙소로 향한다.
차로 1시간가량을 달려 6시를 조금 넘어 애월에 있는 숙소에 도착한다. 리조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풍광이 너무 좋은 곳이다. 좀 낡아 보이긴 해도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고 주위가 숲으로 우거진 아늑한 리조트인지라..... 사실 아이들은 마을과 격리 되어 있어 바깥출입이 용이치 않을 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입이 제법 튀어 나온다. “샘 이건 졸업여행이아니라 수련횝니다.”라고 한 아이가 궁시렁 된다.
시장이 반찬이라 밥이 쑥쑥 내려가는 밥통을 보며 이들이 낮부터 김밥 몇 덩이로 시장기를 속이드니만 접시에 코를 박고 열심히들 먹는 모습이 어떤 동물을 연상시킨다. 한마디로 짐승 수준이다. 밥이 모자란다. ‘무슨 촌놈들도 아니고...’라고 반찬을 담아주는 아주머니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밤에 인근에 있는 그곳 주민들만이 애용한다는 바닷가 횟집으로 갔다. 별 생소하지 않은 회들이 놓이고 한라산 소주가 새로워 보였다, 생각보다 독하지 않은 한라산 소주에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을 즈음 벌써 주위에선 취기가 빨리 달아오름은 어인 일인가......
이튿날
이른 아침 파도 소릴 들으며 깨어나 비몽사몽 창밖을 내다본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날씨다. 아침을 먹고 출발 하려는데 비가 제법 내린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연거푸 수건으로 창문을 훔친다. 오늘은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로 간단다. 겁이 덜컹 난다. 난 배 멀미를 좀 심하게 한단다. 제 작년에 홍콩에서 마카오로 배타고 갔다가 배 멀미로 고생을 좀 했었다. 아뿔사! 멀미약도 먹지 않고 바로 배에 올라 버렸다. 배가 출발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 왔다. 나는 옆에 있던 선생님이 마라도에 가서 자장면을 꼭 먹어야한다기에 그기에 혹해서 그만 일을 저질러 버렸다. 배가 출발한지 5분도 안되어 바이킹 타면서 혼났던 옛일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들과 수학여행을 다녀오면서 용인 에버랜드에서 바이킹 타고나서 나 혼자 멀미한 적이 있었는데....파도가 고동을 친다. 바이킹을 연상케하는 유람선이다.
어제 먹은 술까지 다 올라온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우웩 하면서 비닐봉지를 찾는다. 나도 아이에게 하나를 얻어 내용물을 확인 중이다. 10분도 채 안 걸린다는 배가 30분을 넘게 출렁된다. 일분이 여심추라.....드디어 마라도에 도착했다. 땅에 내렸는데도 땅이 흔들리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내가 태어나고 이보다 더 멀미를 심하게 한 적이 없다. 하늘이 노랗다.
CF 이창명의 ‘자장면 시키신 분’이란 광고에 나오는 집은 주인이 없고 주위에 다른 자장면 집으로 들어간 아이들과 다른 선생님들은 나보고 좀 먹으면 낫는다고 했지만 자장면 냄새조차도 싫었다. 옆집 빈 자장면 집으로 혼자 자리를 옮겨 넉 다운이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실신 해 버렸다. 비가 주룩주룩 세차게 내리고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 도무지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주위의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샘, 정신 차리이소오” 라고 했지만, 나는 “샘은 여기서 못나간다. 마라도에 살 테니 너희들 끼리 가라”고 했다. 그 와중에 몇몇 악동들은 제법 굵은 비를 맞고 섬 내의 카트를 타고 룰루랄라 소릴 지르고 까르르거리고 난리 법석이다. 마라도에서 주어진 시간이 끝난 모양이다. 아이들이 두고 갈까 나를 흔들어 깨운다. 겨우 배에 올랐다. 내 스스로 미리 비닐봉지와 휴지를 한웅 큼 손에 쥐고 뱃전에 앉았다. 일부 샘들은 나를 찾느라 소동을 벌인 모양이다. 학생부장 샘이 아이를 시켜 배 뒷전으로 오라신다. 배 뒤편이 멀미가 덜나니 그쪽으로 오라신다. 뒤로 휘청 걸어가다 중간에서 평상 위에 편안히 드러누운 아이들이 눈에 들어 왔다. 공간이 없는 아이들 틈바구니에 비집고 들어가 누워 버렸다. 아이들이 겁이 나는 지 옻나무 작대기 피하듯 자리를 옆으로 옮긴다. “샘 괜찮으세요?”라고 도영이라는 녀석이 내려다보고 실없이 웃고 있다. 배안엔 온통 mbc샘이 멀미한다는 소문이 좌~악 퍼졌다. 이건 빅뉴스 일게다. 언제 내가 저들에게 이런 몰골을 보였단 말인가....으아아아아앙 그간에 내가 일구어놓은 체면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순간이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매국노가 되더라도 독도대신 마라도를 일본에 주라고 했을꼬......여지없이 오는 길도 가는 길 못지않게 비닐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이번엔 더 이상 속에서 올라올게 없는 모양이다. 마치 임산부가 헛구역질 하듯 맹물만 올라온다.....으이그....지긋지긋한 항해가 끝이 났다.
소인국 테마파크로 향했다. 버스에 올라도 멀미는 가시질 않았다. 기사 아저씨에게 비닐봉지를 찾으니 옆에 아이가 걱정이 되는지 호주머니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준다. 걱정하는 눈초리가 역력하다 허긴 내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색깔이 변해 있었으니 말이다.
테마공원에서 샘들과 기념 촬영 몇 장 찍고 나는 발길을 돌려 나와 버렸다. 점심시각이 다가오자 아이들이 뷔페식당 앞에 줄을 길게 서 있다. 샘들이 국물이라도 좀 먹으라고 했지만 냄새조차 맞기 싫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미역국 국물만 한 모금 마시고 식당을 나와 버렸다. 식당 앞에서 바람을 쪼이고 있는데 나의 짝 궁 샘이 엿이라도 좀 먹으라고 건넨다. 달아서 그런지 삼키기가 좋다. 엿을 몇 조각 먹으니 좀 낫구나......
비가 간간히 뿌리는 오후에 주상절리로 향한다. 바닷가를 끼고 산책로를 따라 부서지는 파도에 육각 벌집모양의 절리들이 암벽에 새겨져 있는 모습이 장관이구나. 시원한 비바람이 섞인 바닷바람을 쐬니 한결 몸이 풀렸다. 근처 정방폭포에서 단체 사진을 몇 컷하고 숙소로 향한다. 오늘 하루는 나의 스타일이 망가지고 무너지고 꾸겨지긴 내 인생에 처음일 게다......‘오늘 밤에 아이들하고 놀아야하는데......’ 벌써 걱정이 앞선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잠시 뉘였다가 저녁 8시 무렵에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 30명을 한방에 모으니 너무도 비좁아 몇몇은 구석 자리에 서서 부라보를 했다....물론 술은 안 되지만 그래도 성인이 되려는 녀석들이니 맥주 한 캔씩은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펜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에 못 이겨 아이들과 게임을 하고 놀다가 방을 나섰다. 숙소로 와서 샘들과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고 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단체로 지하 노래방으로 갔다는 소릴 듣고 내려가 보니 코딱지만한 방에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 소릴 지르고 춤추고 난리 났다. 나도 한 곡 뽑았다......제주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인가....밖에서는 바람 소리가 태풍이 불어오듯 쇠 소리를 내며 밤바다 파도의 성질을 돋운다. 폭풍주의보인지 풍랑주의보인지 내린 밤바다는 허옇게 밤새 아쉬움을 토로하더라....
마지막 3일째 날
아침부터 태풍보다 센 바람이 불다 그 와중에 비까지 급기야는 눈으로 그것도 싸락눈이 내린다. 잘못하면 비행기가 못 뜰 수도 있단다. 서둘러 숙소에서 짐을 꾸려 밖으로 나오니 왠만한 덩치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세다. 제주도가 삼다도가 아닌가. ‘바람, 돌, 여자라든가....’ 그중에서도 최고는 바람이어라!! 실감한다. 바람이 최고여....
성산 일출봉으로 향한다. 싸락눈이 비되어 내리다. 다시 싸락눈으로 바뀐다. 내려오는 길에 맞바람을 맞아 싸락눈이 얼굴을 때린다. 따끔따끔한 맛이 일품이라. 어느새 외투는 눈비에 젖어든다. 차를 달려 용두암으로 향한다. 부서지는 파도가 바람에 날려 용두암 아래로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냥 서 있기도 힘든다. 그냥 눈으로 대충 둘러보고 서둘러 차에 오른다.
공항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맛나게 먹고 공항으로 향한다. 3그룹으로 나누어 비행기를 타는데 1진은 벌써 12시 비행기로 떠났다. 1시간가량 지연이 되고 나서 말이다. 우리비행기도 30분이 지연 된단다. 그것도 양호하다. 목포행 비행기는 결항이다. 불안하게 떨리는 비행기가 요동을 치며 구름 위를 나른다.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높이 날고 있다. 길디긴 2박 3일의 여정이 마무리 되고 있다. 김해 공항의 바람도 만만치 않다. 영하의 날씨란다. 제주도는 바람만 그랬지 날씨는 온화했다. 하지만 이곳은 징하게 몸을 파고드는 바람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 기온이 묵직하게 내려가고 있다. 한마디로 춥다....어둠이 깔리는 저녁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한다. 내일은 푹 쉬어라, 애들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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