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애기동백

문응서 2022. 11. 25. 10:52

늦가을은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봄부터 피던 금계국도 까만 씨방울을 머리에 이고 간간히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지만, 겨울에 들어서는 문턱에선 보기 드물게 핀다. 물론 아직도 길가엔 소국 즉, 노오란 산국이 피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차가운 뭇서리라도 내리면 금방 말라 시들어 버린다. 그럼 이 황량하고 쓸쓸한 태복산 산책로, 일명, mbc로를 장식할 주인공은 누구인가? 바로 동백이다. 조영남의 모란 동백이란 노랫말이 생각나게 한다. 모란 동백이란 말이 애기동백에게도 제법 어울리는 단어다. 물론 1절 가사에 모란과 2절가사에 동백을 나누어 부르고 있지만, 애기동백은 꽃봉우리가 작은 토종 동백과는 달리 꽃망울이 모란처럼 크고 꽃 얼굴이 활짝 피는 데, 이렇게 활짝 피면 처음 보는 사람은 모란 꽃인지 장미 꽃인지 구분을 잘 못할 정도로 흡사 모란과 닮았다. 혹자들은 장미와 닮았다는 이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애기동백을 모란동백이라고 부르고 싶다. 

올해는 도로변에 애기 동백꽃이 제법 많이 필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부터 첫 꽃 망울을 터뜨리더니 지금은나무마다 제법 많은 꽃망울을 맺고 있어서 올해가 그 전성기를 맞이하리라 예상한다. 붉은 동백꽃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분홍 그리고 흰 동백이 그 숫자는 많지 않지만 간간이 눈에 띈다. 반들반들한 청록의 두터운 잎사귀 사이로 빠알간 꽃망울을 맺지만 쉬이 피지 않는다.  꽃봉우리는 일주일 이나 이주일에 걸쳐 둥근 모양을 잡다가 어느 순간에 조용히 열린다. 그렇다고 나팔꽃 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마는 그런 성급하고 여린 성질의 꽃이 아니고 하루종일 피어있고 며칠 후에는 꽃 잎이 하나 둘씩 떨어지지만, 토종인 동백은 꽃망울채 떨어져 땅에서 한번 더 피어 생에 두번 피는 꽃으로 시인이나 글쟁이들의 단골 글의 소재로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렇지만 애기 동백은 그렇지도 않은 것 처럼 보인다. 며칠 동안을 활짝 웃다가 그 웃음이 다하면 한 잎 두잎 땅으로 내려앉아 지나가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웃지 않을 수 없다. 향기도 거의 없이 화려한 얼굴로만 지나가는 벌들을 유혹하여 불러 본다. 외면하고 진한 향기나는 산국으로 달려 가는 벌들을 물끄러미 지켜만 본다. 그래서 동백의 씨방이 잘 맺히질 않는구나. 님을 봐야 뽕을 따고 서방님을 만나야 결실을 맺지, 아이쿠야. 

올해도 어김없이 애기동백꽃이 피었다. 아침 저녁으로 오가는 길가에 핀 동백은 지나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늘어나는 사람 수에 동백꽃들이 그 정을 다 나누어 주질 못한다. 즉, 보는 이들만큼 동백꽃의 숫자가 많지가 않다. 나에게 돌아올 동백꽃이 한정되어 있다. 근데, 동백꽃을 포식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학교 인근에 체육 공원이 있다. 언덕 비탈에 동백나무가 십여 그루 남짓 서 있다. 특히, 흰 카멜리아 나무가 너뎃 그루나 있다. 희안하게도 흰동백이 먼저 피고 붉은 동백이 시기 상으로 조금 늦게 핀다. 물론 조금 더 양지 바른 곳에 큰 동백 나무에선 꽃이 만개가 되어 있지만, 내가 즐겨 관찰하는 장소에 동백은 흰 동백이 지금 절정에 이르렀다. 꿀벌들이 먼저 찾아서 꿀을 담아가고 있다. 이들이 나의 작품활동을 방해하는가? 아니지 내가 이들의 생업현장을 방해한 불청객이지, ㅋㅎ

점심 후에 산책하기 좋은 곳이고 계절마다 피는 꽃들로 사람들을 끌어 들이고 있단다. 귀여운 강아지에서 부터 인조 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이용하는 어린아이에서 부터 운동장 둘레에 트랙에서 몸을 다듬는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끊일 날이 없는 도계동의 명소가 되는 곳이다. 봄이면 벚꽃에 개나리, 조팝나무, 그리고 명자나무 등이 차례로 피어나고 그후로는 노랑 양지꽃과 흰 찔레꽃이 만발하다가 푸른 녹음이 끝날 무렵부터 이듬해 봄까지 애기 동백이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흰 카멜리아가 그 비탈길을 하얗게 눈부시게 장식하고 있고 붉은 동백은 수줍은 듯 드디게 꽃망울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곧 활짝 핀 미소로 우리에게 다가오리라. 추운 비바람 맞아 굳굳이 견디면서 겨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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