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창원에서 출발하여 11시 30분배로 고산 윤선도의 섬, 보길도로 간다. 날씨는 3월 중순에 해당한다는 따뜻한 남녘의 날씨답게 가볍게 불어 오는 겨울 바람도 따습다. 우리가 탄 농협배와 좀 더 큰 장보고호가 있지만, 우리 시간대에는 작은 규모의 농협3호다. 두 종류의 배가 30분 간격으로 땅끝항과 노화도 산양항을 오간다. 넘실대는 물결을 나래삼아 거침없이 나아간다. 땅끝 전망대와 땅끝의 묘한 여운을 남기고 항구를 밀어 내고 먼바다로 나아간다. 일찌 감치 배의 갑판으로 올라오니 주위 풍광이 한눈에 들어 온다 정면의 섬이 보길도 인가 싶었지만 달려간 섬은 보길도로 다리로 이어지는 노화도다. 노화도 선착장에 도착하여 1번 차인 우리파가 제일 먼저, 노화도에 나의 애마 바퀴를 접하는 순간 보길도 섬투어가 시작된다.
노화도에서 보길대교로 가는 길 에 마주한 섬
노화도에서 제일 먼저 가야할 곳은 윤선도 원림이다. 뭐니뭐니해도 보길도는 윤선도의 섬이다. 윤선도를 빼면 보길도는 지금도 원시림의 섬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구불구불 섬길을 돌고 돌아 가는 길에 바다가 나타나다. 물론, 섬이니까 바다가 수시로 나타나겠지만, 눈에 들어 오는 섬이 있어서 차를 세우고 그 섬을 폰에 담아 두고 싶었다. 아쉽게도 섬이름을 모른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름이 나오겠지요. 20여분 달리고 달려서 네비게이션이 목적지라고 알려주는 곳은 초등학교 인근으로 네비는 퇴근해 버렸다. 분명 이부근이라는 사실이다. 차를 돌려서 나오면서 다시 목적지를 설정하여 가보지만 다시 그자리에서 안내가 종료된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초등학교 뒷편에 원림이 있었다. 주차장도 있고 다른 일행 한팀이 앞서 돌고 있었다. 입구 전시관을 둘러 보고 바로 세연정으로 향했다.
세연정의 세연은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으로 고산이 부용동을 발견 했을 때 지은 정자로 그 중심에 세연정을 세우고 바위와 나무 그리고 물과 같은 자연을 조화롭게 꾸며서 만들어 놓은 정원으로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고 풍수를 가미한 듯 음양을 잘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주변에 곳곳에 남아 있다. 7개의 바위들이 있다는 칠암 중 하나인 혹약암이 보인다. 다른 바위들도 주변에 많아서 어느 바위가 어느 바위인지 오히려 혼란만 가져온다.
칠암 중 하나인 혹약암
지금 바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가뭄인지 겨울인지 정원의 물이 말라 있었고 담고 있는 물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물에 비친 세연정이 고즈녁한 한낮의 시간대로 무심히 흘러 간다. 정원을 돌아 판석보를 지나다 보니 옥수대로 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길은 가파르지만 오를 만했다. 옷수대 바로 밑에 난 석굴같은 길이 나온다. 이곳을 통과하여 올라 가니 너른 바위가 나온다. 낭떠러지 너머로 저 아래 세연정이 보인다. 세연정에서 활로 옥수대 바위표적을 향해 활을 당겼다는 선비들의 기개를 볼 수 있다. 학문과 무예를 동시에 길렀던 선비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불과 80여 미터라는 거리지만 내눈에 100미터는 넘어 보인다.
옥수대에서 본 세연정
다음 행선지는 동천석실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듯 보였다. 서석재나 곡수당이 주변에 가까이 펼쳐진다. 동천석실로 가다가 죄측 주차장이 있는 낙서재로 방향을 돌려서 들어 갔다. 비교적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평일이라 그런지 차량이 우리차외에 한대가 있다. 낙서재와 곡수당은 200미터 300미터 거리에 있다는 안내판을 따라 낙서재로 향했다. 고산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이다. 바로앞 거북 모양의 바위, 귀암은 선생께서 직접 손으로 바위를 쪼아 만들었다고 한다. 이 바위는 낙서재를 짓는 중요한 표석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낙서재에서 건너편 산 중턱에 동천석실이 눈에 들어 온다. 오늘 고산 윤선도 여행의 백미가 될 곳이 아닌가, 벌써부터 마음이 조급해 진다. 내려오는 길에 곡수당에 들러 인공 정원과 주변 경관을 들러 보고 돌아 선다.
낙서재와 귀암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동천석실로 가기위해 주차장을 나왔는데 골목을 벗어나서 불과 100미터도 되지 않은 곳에 동천석실 가는 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주차장 뒷켠에 옛 동천석실 가는 옛길이란 표지를 좀전에 보았지만 바로 뒷편에 가는 길이 나올 줄 몰랐다. 진작에 차를 주차장에 두고 걸어서 나와도 되는 거리에 동천석실로 가는 길이 나왔다. 마침 빈 공터에 차량 한대가 주차되어 있길래 나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이 정자는 선생께서 글을 읽고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시상을 떠올리던 곳이라 여겨 진다. 소나무와 상록수림이 울창한 입구를 지나 비교적 쉽지 않은 산길을 따라 100여 미터 올라가니 석실이 보인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동천석실 침실
아래 쪽에는 1평 남짓한 1인용 내지는 2인용 공간의 방이 나온다. 가파른 언덕 위에 세워져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졸이는 곳이지만 시야는 탁 터여서 낙서재를 마주하고 있는 기가 막히는 장소다. 부용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연꽃이 피어나는 지세를 가진 곳이라고 이곳을 부용동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동천 석실은 아래에는 침실이 있고 위의 석실이 동천석실이다. 침실을 뒤로하고 더 가파른 언덕 위로 올라가니 바위들을 에워싸고 비좁게 자리잡은 동천석실이 나온다. 이 곳이라면 선도의 모든 시조가 절로 술술 나올 수 있는 공간이라 볼 수 있다. 건너편 낙서재까지 줄과 도르레를 사용하여 음식을 날랐다는 얘기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천석실
바로 곁에 차를 끓여 즐겼다는 차바위가 보인다. 오목하게 바람을 막아서 불을 지피기가 용이했으리라. 하지만 요즘 같으면 산불의 위험도 있어 가히 불을 지필 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은 의외로 어렵지 않고 주위 상록림이 눈에 들어 온다. 주변에 쌓아 놓은 돌탑들이 나름대로 실력이 있는 고수의 손놀림을 엿보게 한다. 자신의 취향대로 단순하게 쌓아 올린 것으로 보인다. 큰 돌무더기 보다는 간결하게 자신의 예술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다.
망끝전망대
해남이 땅끝 전망대라면 보길도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이 망끝 전망대는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라는데 배시간이 촉박하여 간단하게 흔적만 남기고 작품활동(사진)만 하고 가려했는데, 전망대 아래에서 사람들이 올라 온다. 아마도 아래로 내려 가는 길이 나있는 듯, 용기를 내어 조금 내려 갔는 데 아름다운 경치와 파도소리가 넘실되는 공간이 나온다. 사진 몇 컷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 보옥리 공룡알 해변으로 갈 채비를 서두른다.
보옥 공룡알 해안과 보족산
보족산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배시간이 촉박하여 서둘러 찾아간 곳은 공룡알 해변으로 접근하기가 애매한 길이다. 마을 속으로 좁은 동네 길을 지나 차량 진입이 금지 표지가 나온다. 해변은 보이질 않고 어촌 마을 마당처럼 보이는 공간에 주차를 하고 나오니 해변에 갔다가 오는 듯한 일행들이 오는 곳으로 내려가니 해변이 나타난다. 말 그대로 크고 작은 공룡알 모양의 몽돌들로 가득하다. 파도에 부딪히는 소리가 차르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밀려 왔다가 또 밀려 온다. 벨리 댄서가 의상에 붙은 장식들이 서로 부딪혀서 나는 소리가 연상 된다. 포말을 품은 물결에 세수한, 갓나온 몽돌들이 몽글 몽글 순두부처럼 부드럽게 피어 올랐다가 이내 하얀 포말 가루가 되어 다시 땅속으로 사라 진다. 몽글한 몽돌들이 하얀 거품을 흩뜨리고 하얀 파도를 뱉어 낸다.
공룡알 해변 몽돌
출항할 배시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당일치기로 보길도 여행이 가능하지만 당일치기로는 무리다. 앞으로 있을 긴 여로는 잠시 잊기로 하고 선착장으로 내 애마를 다소 거칠게 몰고 달려 간다. 5시 배를 타려면 서둘러야 하지만 5시 30분 배도 있잖아, 네비에는 5시 1분으로 나온다.
선상에서 본 일몰
노화도에서 해남으로 돌아가는 배 선상에 올라 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부두에서 지고 있던 낙조가 거의 바다로 들어 가고 있다. 조금만 참아 준다면 선상에서 낙조를 볼 수 있으리라. 저녁 시간이 되니 바람이 차갑다.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고 일몰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 고산이 살던 시절에 간신배들이 해를 가려 시야를 흐리게 하듯 일몰은 실패작으로 끝나는 가.
아쉬움을 남기고 땅끝 동네 맛집을 찾아 보지만 별로 구미에 닿는 음식이 없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니 무엇인들 맛이 없겠는가. 검색해둔 순대국밥집은 일찌기 4시경에 마감을 선언했고 우연히 생생정보통 맛집인 본동기사식당이 눈에 들어 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갈치백반을 시켰다. 반찬이 포개어져 한 가득 쟁반을 채우고 있다. 포개진 접시들은 식탁에 올려지고 이내 갈치 조림이 불위에 올려 진다. 벌써 밥 공기 절반이 기본 반찬에 흡입되고 있다. 아직 찌게는 미동도 하지 않는데 말이다. 탁월한 선택이다. 반찬에 파리가 나왔다는 둥, 양념이 짜다는 둥 하는 댓글은 잊은지 오래다.
본동기사식당 갈치백반
이미 바닥난 밥공기에 갈치살을 발라 한입, 새로운 식욕이 되살아 난다. 상에 나온 반찬들은 남도 음식 특유의 맛깔과 향이 시장끼를 몰아 내고 있다. 숟가락과 젓가락의 운행 횟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바로 그때 언제 나타났는 지 주인 아주머니가 밥 한공기 더 드실꺼냐고 묻는다. 내 밥공기를 보고 계셨나 보다 밥 반공기만 주실래요? 아름다운 마음씨, 새밥 한공기를 그대로 주시며 남기라고 하신다. 그러면 남은 밥은 자기가 먹는다고 하신다. 감동의 물결.....
본동기사식당의 가성비 좋은 남도밥상
사실은 집사람과 내가 밥 한공기를 그만 뚝딱해 버렸다. 내배는 이미 물결치는 포만감으로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다. 사실 오늘 당일치기를 위해 달리다 보니 아침에 우동 한그릇, 점심에 떡 한개가 끝이었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순간적인 만찬이 끝났다. 아쉬움은 자판 커피로 달래며 돌아갈 길을 걱정해야 했다. 길고도 짧은 하루, 보길도 투어가 서서히 깊어가는 밤을 달려서 종착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순간이다.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 온다. 맙소사, 이런 불타는 트롯하는 시간이다. 오는 잠을 밀어 낸다. 오늘도 일찍 잠자긴 틀렸구나. 행복한 여행, 보람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