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새벽 4시를 달리고 있다. 길어진 밤 시간을 달려온 시계도 밤새 곤히 잠던 나를 깨우고는 눈을 비비고 졸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항상 알람 시간 보다 30분 내지는 1시간 일찍 일어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걸 보니 나도 이제 새벽형 인간으로 바뀌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요며칠 사이에 부쩍 든다. 늙으면 새벽잠이 없다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익히 보아온 터라 나자신도 삶의 한 과정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다시 잠들기가 쉽지가 않다. 몇십분 또는 한시간이 훌쩍 넘어가도 도무지 잠을 다시 이루기 힘들다. 의학적으로 따지면 불면증이라고 병적으로 취급할 텐데 말이다. 허참, 커피를 한두잔씩 더 먹은 날에는 어김없이 12시 또는 1시 그리고 3시나 4시에 잠에서 깬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 생숭 맹숭한 생각에 잠이 쉽게 오질 않는다. 아니지, 잠이 나를 거부한다.
얼마전 퇴임한 정샘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는 말과 수면제를 가끔씩 처방해서 먹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자다가 몇번씩 일어난다는 얘기나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 나도 그 길을 가고 있다. 잠을 깊이 자기로 유명한 나이지만 지금 내가 짧아진 수면 시간과 몇번씩 자다가 깬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별의 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서 하룻밤에 집을 여러채 짓고 아이들 걱정에 야속한 시간이 흘러 가는 줄도 모르고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잡념에 빠져 있게 된다.
잠 이야기가 길어졌구나. 30여년 간의 교직 생활도 이제 마지막 2학기 2차고사 첫날에 3학년 들은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다. 출석률이 저조하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무리 시간이 점 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연일 이어지는 모임 스케줄이 하루도 빠짐없이 잡혀 있다. 평소 보다 시험때가 더 바쁜 것은 평소엔 잡을 수 없는 약속들을 시험때로 미루어 놓으니 빨리 잡히는 약속들을 먼저 픽스해 놓다보니 다른 모임들이 시간을 잡기가 더 더욱 어려워 지고 있다. 날짜는 한정 되어 있는데, 모임은 자꾸 늘어나니 갑자기 모임을 하자는 약속들은 중복이 되어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언제 잡힐 지 기약 없이 연말에 또는 내년에 만나자는 약속들은 모임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새삼스러워 진다.
오늘은 약속이 없다. 그런데, 아침에 잠시 얼굴을 보았던 걍교수가 찾아와서 짧게 나마 주말에 딸아이와 다투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내년에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이와 다투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안좋다고 한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나이에는 사춘기가 빨리 온다고 하고 위로의 말을 던져주려는 데 마침 천선배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면서 일단락이 났다. 시험감독 시간을 바꾸려하는 데 1,2학년 시험 시간과 3학년 수업 시간이 맞지 않아서 바꾸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두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애틋한 가족 사랑 이웃 사랑하는 마음들을 잠시나마 볼 수 있어서 과거로 돌아가 본다. 딸아이들은 한번 씩 엄마나 아빠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아들보다 딸을 다루기가 쉽지 않다. 아내도 한번씩 딸아이가 누구를 닮아서 저런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부모를 닮지 누굴 닮겠는가. 자식은 부모의 거울과 같은 것을 ... 그걸 깨달으면 벌써 늙어 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리라. 걍교수도 너무 마음에 두지 말고 훌훌 털고 딸아이와 잘지내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