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행
경주기행 2012.12.22(토)~23(일)
경주에 사는 수석교사인 유명준 집들이 겸 팔공친구들 모임으로 일찍이 정해두었지만 정작 모임에 온 친구들은 진구, 영욱 그리고 나 4명이었다. 전날 내린 눈과 비로 인하여 도로 사정을 염려한 우리는 각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열차대신 시외버스를 타고 12시 30분경에 경주 터미널에 내렸고 진구는 20여분이나 빨리 밀 양 대구를 거쳐 경주에 도착했다. 영욱이는 저녁에 합류하기로 했다.
터미널에서 3명이 모여 가까운 시장(경주중앙시장)에서 30년 전통의 돼지국밥을 먹었다. 이름에 걸맞게 걸쭉한 국밥국물이 입에 쩌억 드러 붙을 정도로 국물이 진했다. 명준이는 국밥 자랑을 하면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해버린다. 식당을 나오며 봐두었던 시장 거리 난전에서 생선을 파는 가게를 지나가다 명준이의 발길을 잡는 것은 이만기 다리 만한 한치 한 마리였다. 오징어인줄 알았는데 대형 한치란다. 어부하는 아저씨가 직접 잡은 거라고 한다. 3만원도 싸다고 얼른 흥정 없이 명준이는 낙찰을 본다. 새끼 오징어 2마리를 덤으로 얻어가지고 남산으로 향한다.
통일전 주차장에서 남산채비를 끝내고(명준이 방금 화장실 갔음) 바로 옆에 있는 서출지로 향했다. 신라 소지왕 때 이못에서 왕비의 비행을 알리는 글이 나왔다고 해서 書出池라고 한단다. 사진 한 컷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2시를 전후로 출발하여 입구에서 이정표를 확인하여 국사골로 접어든다. 비가 온 탓인지 땅이 젖어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길을 오르는데 징구는 잰걸음으로 우리보다 서너 발걸음 앞서 간다. 산행이란 천천히 주위 산천을 두루 돌아 보고 감상하며 올라야 힘들지 않은 것을 에고 얼마나 가려나 명준이와 나의 걱정을 보란 듯이 잠재우며 씩씩 잘 도 간다. 명준이와 나를 뒤에 두고 혼자 저 앞에 간다. 중턱 쯤에 이르니 경주 바람이 제주 바람에 비할 까 쌩쌩 귀전을 때린다. 귀가 시리고 눈물이 핑돈다. 진구가 체력에 한계가 왔는지 길을 잘 못들어서서 명준이가 앞장서서 국사골 중턱에 이르다. 잠시 쉬어가는 바위 너머로 명준이 새아파트가 보이고 경주 동쪽 지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토함산 산자락 중턱에 풍력 발전소의 바람개비가세찬바람에도 일정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 좌측으로 상사암이 보인다. 상사병에 걸려 죽은 처녀, 총각바위로 신라 때는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빌던 바위란다.
우리가 앉아 있던 바위 위에 경주 8괴 중 하나인 남산부석이 보인다. 큰 바위 위에 부처님 얼굴처럼 생긴 바위가 얹혀 있는 모습이다. 바위가 허공에 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해서 부석이라 하고 버선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버선바위라고도 한단다.
잠시 후 팔각정 터에 도착하여 잠시 쉬면서 주위 풍광을 들러 본다. 바로 옆 나무 가지에 까마귀 몇 마리가 시끄럽게 울어 댄다. 자기들 쉼터를 우리가 점령이나 한 듯이 비행을 하며 울부짖고 난리를 떤다. 그러고 보니 경주엔 까마귀 떼가 많은 것 같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사자봉을 목전에 두고 발걸음을 돌려 용장사곡으로 향한다. 용장사지와 석탑을 보러 간단다. 십 여분을 걷다보니 바로 고개 너머 칠부 능선에 자리 잡은 용장사지가 나온다.
사자봉에서 용정사곡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한 컷하니 경주남산의 속살처럼 굽이굽이 골을 이룬다.
용정사곡 삼층석탑이 남산의 명당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 풍광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거친 골바람을 안고 우뚝 솟아 있다. 윗부분이 날아가고 없다. 이곳은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던 절터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더 주위의 경치를 돌아보게 한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니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진구가 정성을 다해 석불을 가리키는 진구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그 장소에 있는 바위를 재료로 불상을 새겨 하나의 신앙심과 예술성을 불러 일깨운 조각가를 떠올려 본다. 좀 더 아래로 내려오니 머리가 보이지 않는 석조여래좌상이 삼륜대좌 위에 꿈쩍 않고 앉아 계신다. 잃어버린 머리를 찾으려는 듯 흘러가 버린 시간을 되돌리려는 듯하다.
다시 오던 길을 돌아 서서 가파르게 내려오던 벼랑을 따라 올라 간다. 내려 올땐 몰랐는데 막상 올라가려니 제법 숨이 차다. 고개를 다시 올라와서 하산하는 길에 마주친 삼화령이다.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이곳 봉우리를 합쳐 삼화령 이라 했다는 곳이다.
안내 현판과 실제 사진 속 해발 494 미터 높이의 고위봉을 똑 같이 사진 속에 담아 보았다. 바로 뒷편에 충담스님이 차를 바쳤다는 부처님은 없고 대좌 만 남아 있다. 그 대좌위에 앉아서 경주 남산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고 앉아 있노라면 잠시나마 무념무상 속세를 잠시 떠나온 느낌마저 든다. 길가 에 위치해 있어서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만이 찾는 다는 연좌대좌에서 한 컷 해 본다. 올라가는 길에 실제로 어린 야생차 나무들이 겨울 찬바람에도 파랗게 지조를 지킨다.
이제는 하산길이다. 석양에 물든 남산을 뒤로하고 아쉬운 마음을 남산에 두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완만한 비포장 산림도로라 한층 부담 없이 가볍게 내려온다. 올라갈 때의 숨 가픈 발걸음과는 달리 개나리봇짐 메고 한양가는 선비모양 털래 털래 내려 올 수 있어 좋다. 약수터 근처에서 유선생은 또 볼일을 본다. 오늘 벌써 두 번째로 독수리 사냥에 나선다. 자주 자연과 친교 시간을 맺는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 한 사발에 그간에 쌓인 피로가 확 달아난다. 제법 찬 기운이 옷깃을 헤집고 들어온다. 3시간가량의 산행을 한 후 출발점인 공원 사무실 입구에 다시 닿았다.
아참, 공원 곳곳에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남수진 닮은 곰돌이를 한 컷 담았다. 확인하시라.
마을 어귀에 있는 남산리 3층 석탑을 둘러보았다. 여기까지 남산 여정이 끝나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영욱이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건너편에 보이는 유선생 새 아파트를 잠시 방문하기로 했다. 유선생 학부인 창옥씨와 딸 해정이가 반갑게 맞이 해준다. 얼마후 영욱이가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기별이 와서 불국사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저녁은 은창이가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경주의 먹거리인 소 암뽕이 드디어 공개되는 시간이다. 나도 먹어 본지가 오래되어서 생각이 안날 지경이다. 불국사 역 인근의 식당에서 암뽕을 주문한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식당 안에 붐빈다. 방으로 안내받은 우리는 큰기대감 속에 암뽕을 맞이한다. 자 눈으로 먼저 음미 하시고 입으로 확인하시라.
출출하고 시장하던 차에 소주 한 방울이 목구멍으로 쾌속정처럼 흘러 들어간다. 단 숨에 시간이 멈춰지면서 눈 깜짝 할 사이에 소주 5병을 해치웠다. 아쉽지만 미련 없이 2차는 집에서 과메기가 기다리니 여기에서 일어나야했다. 대리기사 겸 오늘의 호스트인 창옥씨가 능숙한 드라이브로 벌써 아파트 거실로 직행한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동쪽이 확 트여 멀리서 토함산의 허리를 제대로 감상 할 수 있고 아파트 뒷산은 형제산이라는 요새에 새 아파트의 보금자리가 위치해 있단다.
손놀림이 빠른 창옥씨는 어느 틈엔가 과메기 한상을 푸짐하게 내어 온다. 잠시 감상하고 넘어가야겠다.
경주산 금강 쌀 막걸리 한 사발에 암뽕의 소주 취기는 달아나고 막걸리에 새로 취한다. 창옥씨와 유선생이 손수 손질한 과메기의 맛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입에서 살살 녹아 없어진다. 새 아파트의 거실은 막걸리의 향과 과메기의 식감 그리고 친구들의 우정으로 제대로 녹아든다. 눈뜨니 아침이다. 아침 찬바람에 벌써 날아 오른 까마귀 떼를 보며 어제 보다 오늘이 훨씬 추운 날 아침에 먹는 해장국인 명태국은 어제의 숙취를 바람결에 날려 보냈다.
마을 인근에 있는 온천에 들렀다. 오전엔 온천에서 몸을 지지자는데 의견을 투합해서 용감하게 목욕탕 안으로 들어 간다. 갑갑해서 1시간도 못 버티고 전부 나와 버렸다. 경주의 진정한 바람 맛을 볼 차례이다. 경주 남산의 칠불암 마애석불로 가자는 의견에 춥고 바람이 너무 불어 왕릉 몇 개를 둘러보자는 유선생을 따라 나섰다. 정말이지 경주의 바람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압권이다. 괘릉이 오늘의 첫 방문지다. 오전에 10여개의 왕릉을 둘러보고 차가운 날씨와 바람 때문에 서둘러 오전의 일과를 통일원에서 마감한다. 삼국통일의 정신을 기려 세워놓은 통일원에서 잠시 참배와 액자 속의 사진들을 둘러보고 서둘러 인근의 칼국수 집으로 향한다.
1박2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알차고 진한 우정을 확인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손칼국수의 국물에 오전 내내 세찬 바람에 줄줄 흐르던 콧물이 뚝 그치는 건 왜일까? 가볍게 한 그릇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깨끗이 비우고서 아쉬운 이별을 고한다. 영욱이와 진구는 대구로 나는 창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갈 때 보았던 같은 풍경의 무료함에 저절로 눈이 감긴다. 눈뜨니 창원이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여운이 징하게 남는 경주여행이 막을 내린다. - 이 여행에 온갖 정성을 다쏟아준 명준이 그리고 학부인 창옥씨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천년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경주시에 박수를 보낸다. (탈고일 2013년 1월 23일 오후(4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