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남도 문화기행....
2009년 1월 7일 이른 아침 7시 10분경 내 모바일 폰이 아침의 단잠을 깨운다.'난 너를 사랑해~~~' 빅뱅의 요란한 노을 송이 두 소절이 채 끝나기 전에 통화를 누르니 고박사다. "행님 일어 나셨나요?" 7시 40분까지 픽업하러 온단다. 서둘러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조간 신문을 끼고 화장실로 향한다. 올해 고3인 큰 아이가 등교를 서두르고 있단다. 아내가 아이를 학교까지 바래다 주러 아침마다 덜떨어진 눈을 비비고나간다. 벌써 38분이라고 한번더 주지 시킨다. 서둘러 나오니 벌써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허겁지겁 옷을 입고나오느라 여분의 옷과 세면도구를 챙길 겨를이 없다. 편한 등산복에 등산화를 신고 끈도 매지 않은 채로 계단을 달려내려오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아저씨가 내 풀린 신발끈에 시선이 맞추어지더니 내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얼른 윗도리의 지퍼를 올리고 그냥 밖으로 나왔다. 고박사 차를 찾아 두리번 거리는 데 천샘이 베낭을 메고 털럭털럭 특유의 자세롤 걸어 온다. 매일 아침 걸어오는 걸음걸이가 특이해 한눈에 봐도 천샘인줄 안다. 아직 고박사는 도착하지 않았다. 시간을 정확히 아니 약속보다 늘 앞서 오는 양반이라 오늘 따라 몇분 연착이다. 바쁜 아침 시간대는 상황이 평소와는 다를 수가 있겠다. 드디어 10분이 지난 50분에 차에 오른다. 고박사는 형님들이 늦게 일어날까바 일부러 약속보다 빠르게 연락했다고 한다. 바로 정셈인 연호(정샘의 큰아이 이름이 정연호다 그냥 편해서 연호라 부른다)에게 전화를 한다. 이친구는 항상 떠날 채비가 되어 있는 친구다. 아니니 다를까 벌써 준비를 하고 있다. 통화 즉시 오케이 라고 한다. 8시에 전원 승차 완료다.
오늘은 우리줄의 남도 문화 여행이다 일종의 음식 투어라고나 할까....우리나이에 역사탐방이니 힘든 여정 보다는 먹거리나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이 부담없고 편하리라. 차는 벌써 남해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아침엔 늘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한 그릇 하는 것이 여행의 시작이다. 하지만 고박사와 연호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나보다 나와 천선배(천샘을 천선배라부름)는 아침을 챙겨먹질 못해서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기로 했다. 어느 듯 차는 남강 휴게소에 들어간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은 고로 다시 돌아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아직은 식욕이 당기질 않는다. 사천 휴게소에서 간단히 우동으로 요길 한다. 물론 천선배와 나 둘이서 말이다. 9시를 반 넘어 차는 남도의 첫 목표가 전라남도 목포 시청으로 네비게이션을 맞추고 흰섹의 애마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겨울 들녘을 가로지르고 있다. 겨울 날씨치고는 화창하고 멋지다. 바람도 그리 불지않고 여행하기에 그만이다. 시선이 멀리 날아가 머무는 빈 들녁엔 가을 걷이가 끝나고 텅빈 공허함많이 가득하다. 여름내내 시끄러웠던 새둥지처럼 휭하니 떠나보낸 가을을 그리워하고 있다. 언젠가 이길을 달리면서 머물렀던 옛시선들과 오랜만에 해후하면서 또는 새로운 풍경 앞에 다소 낯설어 하면서 바람처럼 지나가는 풍경들을 그저 놓아주면서 차는 전라도 땅에 접어든다. 새벽에 기도를 갖다 왔다는 천선배는 이미 꿈나라로 갔다 불면에 시달리는 연호도 덩달아 눈을 감고 꿈에대한 화답을 하는 중인 모양이다. 차의 앞과 뒤가 이렇게 차이가 난단다. 운전중인 고박사 옆에 앉아서 잘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박사와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졸음을 달아나게 해야하거늘.....
차는 어느덧 전라도의 수도인 광주에 다달았다. 이제부터는 광주 무안 고속도로를 달려야한다. 광주 통게이트를 벗어나오면서 눈에 5.18 묘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 온다. 고박사가 이르기를 우리가 남도에 왔으니 5.18국립 묘지에 참배를 올리는게 예의라고 하기에 모두들 동감을 표했다. 차를 돌려 광주 외곽에 있는 5.18 묘역으로 향했다. 30여분을 달려 망월동 국립 묘지에 도착했다.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고 있어 그 안은 온화했다. 연호가 명당 자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좌청룡 우백호로 묘역을 둘러 싸고 있는 자리가 예사롭지 않게 좋은 곳이다. 아무렴 민주화를 외치다가 또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죽어간 그들이기에 어찌 구차한 삶보다 더 나음이 있으리요마는 뒤 늦게나마 그들의 염원이 반쯤이나마 회복이 되어서 다행이다. 넷이서 나란히 향을 올리고 묵념에 들어 갔다. 그날의 함성과 절규를 마음 속에 떠올리며 쓸쓸히 되돌아 나왔다. 역사의 한페이지를 넘기며....
백마는 다시 광주-무안 고속도로를 달려 목포로 향하고 있다. 네비게이션에 목포 시청을 찍고 달리니 정확히 그 장소에 예정한 시간에 도착한다. 때가 점심시간인 모양이다. 직원들이 밖에서 점심을 먹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시 시청안으로 들어 온다. 고박사와 내가 시청의 안내소로 향했다. 모르는 곳에선 정보를 얻으려면 그 지역의 관공서가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다. 마침 점심을 먹고 들어오던 직원이 우리를 보고서는 어떻게 왔는지를 물었다. 직원 두명이 홍보부에 있다며 사무실로 올라 가자고 한다. 장애인인 고박사를 보고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하며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 주신다. 우리를 안내해준 직원중 같이 왔던 이는 자기 자리로 가고 먼저 왔던 이가 우리가 가져온 지도를 펴고선 목포에 대한 브리핑에 들어간다. 올해 개항 110주년을 맞은 항구도시에서 부터 주위에 있는 목포시내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그분의 정성을 마음 속으로 고맙게 받아 들인다. 하지만 요점은 우리가 가야할 식당이 어디가 좋은 지를 안내 받아야하는데 이직원은 거기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그저 목포의 가볼만한 곳이 어딘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마산시와 영주시하고 자매결연을 맺었다는 둥 사무적이고 목포에 대한 홍보만 벌 써 30여분 설명을 하고 있다. 손바닥 만한 지도를 벌써 예닐곱번은 돌아 다녔다. 벌써 1시를 훌쩍 넘겼다. 고박사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 내가 나섰다. 그분의 말을 막다 시피하며 지금 우리가 점심을 먹어야하니 추천할 만한 식당을 알려주라고 간청을 했다. 그분은 식당을 단도직입적으로 알려주기를 꺼려 했다. 암. 한 곳을 찍어 줄 수는 없는 일이지.... 혹시라도 다른 식당에서 알면 큰일나지라... 그분은 자꾸 수산시장이 있는 횟집을 권한다. 하지만 우린 창원 마산에서 온지라. 두번째로 추천한곳이 목포의 신시가지 형성지인 인동주 식당이다. 연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숨넘어 간다. 뭐하노!!!! 밖이 난리 났단다. 고박사가 내리면서 차를 잠금해 버렸는데 천선배와 연호가 추워서 다시 차 문을 열었다가 경보음이 울린 모양이다. 금방 올줄 알았던 우리가 30분이 지나도 안왔으니 말이다. 그곳 사무실 직원들이 나와서 차를 빼라고 난리가 났단다....
목포 5미 중 하나인 홍어 3합이 유명하다는 인근의 인동주마을 식당으로 향했다. 미리 전화로 주문을 하고 그 식당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치고 우리는 목포시청을 벗어 났다. 인동주마을 식당을 찾아 10분여 달리니 식당이다. 인구 25만의 중소도시니 거기가 그기니까말이다 점심시간이 다소 지났지만 식당엔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첫눈에도 이 식당이 인근에서 유명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동주 한 병에 홍어 그리고 돼지 수육을 걸치니 입한가득 홍어의 특이한 향과 그를 중화시키는 수육과 맑은 인동주 한사발에 금방 시장기가 사라진다. 남도의 별미에 한모금 두모금 금방 술이 익어 간다. 대낮에 낮술되면 안되는데 말이다. 국물은 홍어 내장국이라는 배추 씨라국이 여정에 지친 속을 잘 풀어 준다. 연호는 연신 한그릇을 뚞딲 비운다. 젊은 총각(?)사장님의 말을 빌면 국물은 무한 리필된단다. 3그릇을 리필하니 어지간한 배큼도 물러난다. 식사후 인근에 있는 삼학도로 향했다. 3마리의 학이 내려 앉아 각각의 섬이 되었지만 지금은 매립이 되어 이제는 육지란다. 자꾸 인위적으로 비디가 메꾸어져 육지로 거듭나는 현실이 과거의 추억들을 베어 물고 있어 슬프다. 삼학도에 난영공원이 있다. 목포의 눈물이란 노래의 주인공인 이난영을 기리는 공원이 삼학도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자리잡고서 목포 앞바다를 내려보고 있다. 수목장을 한 이난영여사는 한그루 백일홍나무에 영혼을 묻어 해마다 꽃으로 피어나다.....
목포 투어를 하다 찻길을 돌려 해남으로 향했다. 지금 백마는 땅끝 마을로 달리고 있다. 구비구비 산길로 때로는 해안선을 달리고 달려 어느 덧 땅끝인 해남에 도착했다. 연호는 땅끝이 처음이란다. 반세기 만에 첫발을 내딛는 연호의 얼굴엔 묘한 감정과 기쁨으로 피어난다. 바다에 떠 있는 섬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정겨운 눈길이 피어오른다. 가까운 곳에서 그리고 눈에 아른 거리는 먼 발치에 있는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석양이 지고 있는 돌길을 따라 오르니 전망대가 나온다. 바람이 쌀쌀 맞게 불어 저녁을 재촉하다. 서둘러 전망대에 오른다. 남해가 고향인 고박사의 애향심을 일깨우는 남해의 섬들이 건너편에서 인사를 보낸다. 고박사의 설명으로 한결 주위의 낯설었던 풍경들이 고향의 마음마냥 푸근하게 다가온다. 바다에서 맞는 일몰은 보는이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붉은 빛 해넘이가 남해의 바다속으로 넘어간다. 일몰 후에도 아직 채가시지 않은 황혼을 조명삼아 다시 발길을 돌려야한다. 연호의 반세기만의 땅끝 입성을 축하하기 위해선 이밤 좋은 저녁을 먹어야할 텐데.....
차는 강진으로 향한다. 저녁을 강진의 짱뚱어탕을 먹기로 했다. 항상 여행을 떠나면 계획없이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번 여행에서 내가 느낀 것은 고박사의 여행 방법이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무조건 그지방의 관공서에 찾아가서 그고장의 먹거리나 명소를 찾는다고한다. 관공서 주위니 믿을 만 하고 또 언제든지 그고장을 대표하는 명물들을 가장 손쉽고도 빠르게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저녁 6시를 훌쩍 넘겨 7시가 가까울 무렵에 강진군청에 도착했다. 아직 불이 밝혀져 있다. 직원 한명이 아직 퇴근을 않고 있다. 속을 풀수 있는 국물이 있는 식당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아구탕이니 회는 우리주위에서 흔하니 특색있는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특별하게 추천하는 음식이 없어 했다. 짱뚱어 요리를 잘하는 집을 추천하라고 했다 그러니 동해회관이란다. 천선배가 광주 의 모선생님들과 같이 갔던 집이 동해식당이라고 했다. 이름이 비슷한 곳이라 우리는 그집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바로 인근에 있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식당안은 길고 생각했던것 보다는 내부가 큰 방이었다. 동해회관 주인이 손수 잘 익은 김치를 손으로 쭈욱 찢어 주는 것이 아닌가. 손님에게 애살 맞게 다가와 친절하게 마음을 여는 모습이 여느 식당과는 달랐다. 아니나다를까 이집 여주인이 짱뚱어 박사란다. 창원 람사르 총회때 짱뚱어의 산란 장면과 잡는 모습이 텔레비젼에 방영이 되었단다. 아주 자랑스러워 하며 짱뚱어 탕을 내어 오는데 그 맛이 묘하게 추어탕처럼 진한 국물 맛을 자아내고 있다. 주인의 친절함에 고단백의 스테미너와 주인 아주머니의 구수한 입담이 어우러진 저녁만찬이었다. 다음에도 이길을 지나게 되면 꼭 한번 들릴 필요가 있는 곳이다. 문밖 까지 나와 손님을 배웅하고 차선지의 길을 알려주는 여주인의 정감에 저녁의 어둠이 수이 몰려 온다. 이제 숙소를 잠아야한다. 예정상으론 화순에 있는 금호리조트가 온천도 할수있고 여정의 피로를 풀어주는데 좋으리라 생각했지만 방값이 만만 찮고 가는 거리가 멀어 인근에 있는 보성으로 찻길을 돌렸다. 중간에서 네비가 최단거리를 찾고 있었는지 알수 없는 산중으로 향한다. 지나가는 행인을 세워 물으니 대뜸 '어찌 이런곳에 다왔디야....'란다. 밤길을 달려 보성에 이른다. 보성에 들어서는 입구에 모텔의 불빛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을 뿐아니라 마음까지도 가져갔다. 제일 큰방에 잠자리를 정하고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 싸워 물살이 제법 세차다. 루룰라라~~ 고박사의 흥겨워하는 콧노래 소리를 들으며 천선배, 고박사, 연호의 코고는 소리가 이방인의 낯선 귀전에서 맴돈다. 도무지 잠이 오질 않을 것 같다. 이 좋은 친구들과의 호젓한 여행을......
선잠에서 깨어난 곳은 첫닭이 우는 새벽이다. 왠일인지 잠이 깊이 오질 않는다. 두번째 닭울음이 새벽을 연다. 처음보다도 더 가깝게 울고 있다. 곤히 잠든 세상에 홀로 깨어 세상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 아침이 밝았다 멀리 무논에는 서리가 내린 모양이다. 보성에서 맞는 아침은 여느 시골과 다를바가 없다. 벌교로 향했다. 아침은 벌교의 꼬막으로 하기로 했다. 시간이 그리 걸리지 않아 네비에서 찾은 그집에 당도했다. 9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다. 그 식당은 점심시간이 되어야 문을 연다고 했다. 인근에는 식당마다 원조 꼬막 정식 식당들이다. 인접해 있는 식당에 이르니 아침 식사 중이다. 살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아주머니가 바로 전에 퉁명하게 걸레질 하던 그집 보다 백번 났다. 어디에서든 혼신을 힘을 다하여 손님을 맞이해야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거늘.....
음식이 나오기 전에 대접 가득 삶은 꼬막을 내어 온다. 까기가 어려워 주인에게 물으니 꼬막 뒷쪽 홈에 젖가락을 걸어서 옆으로 제끼니 국물과 함께 꼬막이 열린다. 어찌 이리도 쉬운 방법이 있었던고, 이 방법을 집사람에게 전수해야겠다. 한상 가득 꼬막 정식을 차린 진수성찬이 나온다. 맛갈나는 남도 음식을 연일 먹을 수 있어서 너무도 고마은 음식 문화 투어가 아닌가. 요즈음은 식당마다 텔레비젼에 나온 맛집으로 소개를 해놓았기 때문에 어디가 진짜 원조집인가를 구별할 수가 없단다. 음식에 정성을 담고 손님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식당이야말로 원조가 아니겠는가.....
백마는 우리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경남 하동으로 향한다. 화개장터와 쌍계사 입구에 참게탕을 잘하는 집을 찾아서 거친 숨소리를 몰아 쉬며 달리는 우리의 애마 백마가 바람을 갈라 달린다. 섬진강의 고운 모래빛이 물빛과 어우러져 구비구비 흘러내린다. 그 고운 길을 따라 우리는 자연의 품에 안긴다. 하동에는 제첩으로 유명하지만 요즘은 제첩도 중국산이 많아서 믿질 못한단다. 그래도 우리의 손으로 요리조리하는데 아니 먹지 않을 수 있겠느가? 천선배 친구가 소개해준 식당으로 낙점을 찍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식당마다 한산하다. 지금이 참게철이라 살이 꽉차고 단단하단다. 천선배 친구가 6년전에 몸이 않좋아서 요양삼아 이곳으로 들어 와서 지금은 옆에 있는 여관에 지배인으로 살고 있단다. 소줏잔을 기울이며 그 친구의 자연 생활에 술이 또 오른다. 서둘러 식당을 나오는데 그 참게가 일본산이란다. 요즘은 농수어물들이 원산지 표식을 한단다. 우리 참게가 아니구나.....맛이 반감되는 느낌이다. 애마는 하동 벚꽃길을 빠져나와 남해고속도로에 이른다. 이제 우리여행의 종착지인 창원으로 향한다. 북창원에서 내려 북면 온천으로 향한다. 여정의 끝을 달리고 있다. 해질녁에 북면에 다았다. 마금산 온천으로 이곳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의 휴양 온천으로 마금산 온천 물이 최고여.....온천 물에 몸을 담그니 여독이 확 풀린다. 어둑어둑한 북면을 뒤로하고 우리의 단골 식당인 지리산 어탕국수 집에 다았다. 20년 전통의 어탕국수집이다. 이집 주인의 손맛을 느낄 수 있고 구수한 어탕 국수에 우리의 여행은 마무리 된다. 옆 테이블에선 아줌마들이 큰 소리로 떠들어 댄다. 이시각에 자식들 저녁밥은 다우짜고.......1박 2일의 남도 문화(음식)기행은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글을 일ㄴ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년 이맘때는 정신 문화의 수도 안동을 가볼 예정입니다....그때까지 안녕.....